02 “녹우야!” 욱현은 벤치에 두 발을 올리고 곱게 누워있는 녹우에게 이마를 짚으며 달려왔다. 걱정이 한껏 묻은 두 손이 제 뺨을 붙들고 놔주질 않았다. 얼굴이 분필 가루가 묻어 나올 것처럼 희게 질린 그는 녹우의 상태를 살폈다. 안 가겠다고 아스팔트에 엎드려 버티느라 코와 뺨이 살짝 벗겨진 것만 제외하면 괜찮았다. 큰 상처가 없는데도 욱현의 얼굴에서 걱...
01 맴맴맴맴맴. 매미가 시끄럽게 짖어대고 있었다. 짝을 찾는 소리가 버스터미널 안까지 들이쳤다. 익을 듯이 뜨거운 바깥과 달리 터미널 안은 서늘해,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더위를 피해 들어왔다. 어디에 가기에 저리 바쁜 걸까? 녹우는 눈을 껌벅거리며 사람을 구경하다 귀에서 시끄럽게 짖어대는 소리에 눈을 와락 구기고 손으로 말랑한 귀를 훔쳤다. 아무리 비벼도...
영웅아 나 결심했다. 이별한 지 6일째 되던 날이다. 햇볕이라도 쬐고 오라는 김여사의 성화에 못 이겨 서열 2위 와와를 산책시키다가 중간에 영웅의 자취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자연스럽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1212. 영웅의 집 비밀번호는 오래도록 똑같다. 내 생일이었다. 왜 내 생일이 비밀번호냐고 물어보니 숫자가 외우기 좋아서 그렇단다...
이별 대처법 : 시작 “네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가 널 얼마나 좋아했는데. 네가 좋아하는 L사의 가방, 생일에 주려고 내가 편의점에서 얼마나 많은 바코드를 찍었는지 아냐? 바코드 찍다가 손에 지문이 다 지워졌어. 나보다 한참 어린 놈들이 와서 담배 팔라고 난리를 쳐도 위법하지 않기 위해서 무서운 거 참고 안 판다고 손을 저었다가 욕을 먹은 게...
08 에스퍼면서 왜 가이드에게 벌벌 떠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심지어 ESP계열도 아닌 PK계열이면서 아무런 능력도 없는 가이드에게 쩔쩔매는 걸 일반 사람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해 보이는 에스퍼들이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꼭 그렇지 않다. 에스퍼가 이리저리 튀는 용수철이라면 가이드는 그걸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다. ...
07 석원은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막 태어난 새끼 염소처럼 손가락을 구부려보고 뒤집어보기를 반복했다. 이래서 S급이라고 하는구나. 에스퍼와 가이드는 운용할 수 있는 에너지 크기로 S부터 D까지 등급이 나뉜다. 이 중에서 국가가 관리하는 건 S부터 C등급으로, 석원은 현재 A등급에 속해있었다. 영진과 매칭률이 65%로 괜찮은 수준이었지만, 문제는 B등급이라는...
06 “둘이 선약 있는 건 몰랐네요. 이야기하기 편하게 저희가 비킬게요.” 옆에서 신나게 유진을 까던 에스퍼들이 후다닥 일어났다. 뒤를 잘 부탁한다는 뜻으로 제 어깨를 꽉 쥔 에스퍼들이 나란히 뛰어나갔다. 어디서 종종 봤던 그림이다. 위급 상황일 때 살기 바빠 내빼던 모습이 겹쳐졌다. 그들의 습성은 여전해 살기 위해서 1년 넘게 울고 웃으며 동고동락하며 키...
05 후끈한 열기에 등에 땀이 줄줄 났다. 사막 한복판에 서 있는 것보다 더한 강렬한 더위가 온몸을 휩쓸었다. 태양이 목에 걸린 것처럼 따끔하고 아팠고 무엇보다 불편한 건, 무언가가 몸을 감싸고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21년을 살아오며 그렇게 나쁘지 않게 살았다고 생각했다. 14살에 에스퍼가 발현돼 캡슐 안에서 6년을 지냈다. 깨어난 시간보다 잠을 잔 시...
04 째깍째깍. 귓속에서 초침이 움직이고 있었다. 내일이 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6시간 3분. 그 말인즉 살 날이 그것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쩌자고 그 순간 동석이라고 했을까. 차에 흠집 낸 게 자신이라는 걸 밝히고 광명을 찾았으면 망치로 머리 한번 찍히는 거로 끝났을 테다. 입을 찧고 싶은 심정이다. 아까 석원이 아닌 척 연기했다는 걸 알면,...
03 [1. 귀하는 현 가이드의 가이딩에 만족하십니까? ⓵만족 ⓶불만족 ⓵에 체크했다면 만족도에 대해 100점 중 몇 점입니까? __점. ⓶에 체크했다면 불만족도에 대해 100점 중 몇 점입니까? __점. 2. 귀하는 현 가이드와 한 달간 몇 번의 가이딩을 하십니까? __회. 3. 가이드가 위급할 때 가이딩을 피한 적 있습니까? ⓵예 ⓶아니오 ⓶에 체크했다...
02 남자가 부딪힌 어깨를 손으로 털었다. “정말 예의 없네요.” 벌어지는 입술을 힘주어 닫으며 눈을 깜박였다. “보통 사람과 부딪치면 빤히 보는 게 아니라 사과부터 하지 않나요?” “죄송합니다.” 한 박자 느리게 죄송하다는 인사를 건네자 싱긋 웃으며 돌아섰다. 뭐지? 그저 가볍게 어깨가 닿았을 뿐인데 기분이 좋았다. 머리를 긁적인 석원은 파티션으로 구분해...
01 [신유진 가이드와 윤석원 에스퍼의 매칭률 72%으로 파트너로 매우 적합합니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인상 썼다. 그녀가 왜 이 화면을 띄운 건지 알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만능 방패처럼 김윤미 팀장은 저 오래된 자료를 꺼내 들었다. 제 불만을 종식 시키기 위한 강력한 카드였으니까. 어떤 에스퍼라도 신유진을 가이드로 붙인다고 하면 캡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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